Dreaming
마녀학교의 아스텔
레몬유자청
2015. 11. 30. 20:06
"네가 평화주의자 마녀로군."
돌연 시큼한 내음새가 났다. 술에 절인 쌉싸래한 체리를 건네며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같은 클래스의 소녀였다. 반에서도 가끔 그녀를 볼 때면 대단히 눈에 띄는 인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새벽에 나뭇가지를 딛는 달의 발처럼 우미한 피부에, 마계 목련꽃이 분비하는 꿀처럼 검은 당밀과 사향 냄새가 풍기며 굽실대는 머릿발이 어여쁘긴 하지. 그래서?
"무슨 볼 일이지? 내게."
그녀가 체리를 내 쪽으로 들이밀며 넌지시 말했다. 입술에 가벼운 웃음이 고이기 시작하는 것이 보인다.
"가끔은 인간의 심장을 먹어 치우고 싶을 때가 있겠지? 솔직하게."
나는 대답할 가치도 없는 지겨운 질문에 이제 더 할 말이 없다. '해부 수업을 거부했다며?' '불필요한 희생은 재앙이라는 주제의 레포트를 냈다고 하던데?' '인간을 좋아하는 거야?' 등등. 이 금색 눈동자의 소녀가 방금 물어 온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애써 차분한 미소로 대답을 돌려주었다.
"전공이 마도공학 이라고 했던가? 내 자궁을 열고 인간의 사생아가 있는지 좀 봐도 허락해줄게."
그러나 그녀는 내 말에 박힌 살얼음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따라왔다. 그녀는 나보다 약간 키가 작은데, 그 탓에 이쪽을 올려다 보는 수선화 빛깔 눈동자가 자꾸만 거슬린다. 달콤하게 타오르는 수선화색 두 눈을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할 줄이야.
"피의 근원, 시원하게 피를 뿜으며 펄떡거리는 겨울 장미색의 심장을 깨물어 뜯을 때의 상쾌함을 너라고 거부할 수가 있겠느냐는 말이지."
나는 고개를 돌려 두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썼다. 그녀가 이 자리에서 나를 마법으로 붙잡아 둔다면, 그리고 내 걸음을 지겹게 방해한다면 가만히 있어야 할 이유는 없겠지. 나는 이 여자가 나를 조롱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있다.
"네 머리카락, 만져 봐도 되니? 별아!"
별.
그녀는 틀림없이 나를 별이라고 불렀다. 아주 부드럽고 아이같은 다정함으로... 그때 나는 아주 이상하게도, 혹은 그 호박색을 발하는 예쁜 눈에 홀려버린 것인지 마음 한 켠에서 그녀에 대한 작은 친근함이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