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아직 수련한지 채 석달을 넘기지않은, 봄 하늘을 닮은 아이의 첫 이야기.
16년도 더 된, 꽤나 오래전의 이야기 이다.
나는 솜털보다도 가볍고 (비유하자면) 그 어떤 물 보다도 깨끗하고 순수한 남자아이를 제자로 삼았다.
18살의 고교생이 '제자'를 둔다는 것은 현대에와서 조금 우스운 일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었고, 그 아이도, 그 아이의 부모도 원하는 일이었다.
내 첫 제자,
'텐류사이 아즈루'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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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전. 첫방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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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삐익 ㅡ )
" 자, 정정당당하게 시작 ! "
심판의 우렁찬 목소리가 연습관내에 호루라기소리와 함께 울려 퍼졌다.
연습관에는 앉은키가 들쑥날쑥한 어린아이들이 둥그렇게 빙 둘러앉은채로 웅성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도장의 정 중앙에는 대결 구도로 두 어린아이가 서있었다. 이날은 ' 단 ' 진급 시험이었다.
보통, 검도 시합이라 하면, 방어구를 차고 , 죽도로 대련하는 것이 보통이나, 우리 '사쿠라이 도장' 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았다. 몸도 단련하여, 검과 자신을 일체시켜 자기 자신도 '검' 으로 인식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방어구는 일체 없음. 대련의 경우, 사용하는것은 죽도보다 더 강한 '목도' 였다.
"안오고 뭐하는거야? 보호구가 없으니 두렵지?─ 그러고도 사쿠라이 도장의 수련생이라고 할 수 있겠냐 ? 맨날 사쿠라기형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면서, 실력은 제일 낮은 주제에! "
"...으..으우...─. "
대결구도에 있는 한명인, 초등학교 3학년인 꽤나 큰 체격의 까치머리 소년이 죽도를 들고 내 이름을 필사적으로 '언급' 하고 있었다. 연습관에서 단체로 수련하지 않은지 벌써 2년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내 이름이 후배들입에서 오르내리는듯 하였다.
그리고 반대방향에, 체구도 작고, 겁먹은 표정으로 ─ 하늘색 머리에 장신구를 매단 .외관상으로 5살정도 되어보이는 어린아이가 자기 키 만한 목도를 들고 바닥만 쳐다보며 엉거주춤 서있었다.
"하아, 먼저 안오면 내가 먼저 간다구? 관중들이 싫어하니까 말이야 !!ㅡㅡㅡ 정말 내가 6살짜리랑 대결해야겠냐고!
까치머리 소년의 말이 있은 직후, 장신구를 매단 아이가 무언가를 결심한듯, 도약자세 ─에서 앞발을 힘껏 내딛으며 뛰어나갔다.
" 히야아아압 ! "
(챙 ! )
그러나, 두 소년의 자존심을 건 대결은, 겨우 수 초만에 끝나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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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합이 끝난후, 바닥에 주저앉으며 구슬방울 같은 눈물을 쏟아내고있는 아이를 팔에 들쳐업고, 유유히 연습관을 나왔다.
" 잉...이이이...잉.. 으엉...흑흑.."
" 괜찮아. 첫 시합이었잖아 ? "
아이를 달래는 것은 18살 먹은 나에게 익숙한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동생이라고는 겨우 한살 반정도 아래의 남동생 밖에 없었기에, (그마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최대한 에너지를 써서 부드럽게 얘기해보려고 노력했다.
"스..스승님.. 아니에요.. 정식에서 처음진거지 저는 항상 지는걸요..우잉.. "
아이는 피멍이 든 고사리손으로 눈을 베베 어루만지며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도복 깃으로 닦아냈다.
그 손이 안쓰러웠던 나는 자신의 도복깃으로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위로를 하기위해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 아즈루. "
" 예.. "
그래. 이아이의 이름이 바로
「텐류사이 아즈루」
" 그래도 오늘은 기본자세도 잘 잡았고, 공격도 잘 피했어. 진게 중요한건 아니니까. "
"..스승님은.. 어째서 저같은거에게 제일 잘해주시는 건가요? 모두들... 저한테 아호즈루 (아호=바보) 라고 부르는걸요.. 저는 한자도 잘 못읽고, 누나보다 약해서 도장에와서 수련하기로한건데... 스승님이 도와주셔도 이정도밖에 안되는걸요... "
" 그래도 잘 하고 있는 거야.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속도가 있거든. 아즈루 너는 재능이 있어. 단지 속도가 느릴뿐이야. "
그렇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마다의 속도가 있다.
예를들어서, 가령 두 사람이 같은 양의 같은 음식을 식탁에 둘러앉아 먹는다고 하자.
한쪽은 5분만에 다 먹을 수있어도, 다른 한쪽이 5분만에 혹은 그보다 더 일찍 먹을 수있다는 가정은 확실치 않다.
사람은 저마다의 취향과 속도가 있으며, 자기만의 길이 있다.
아즈루는 '보통의 ' 타인보다 느렸다. 허리띠의 색상이 변하는 속도도, 키가 자라는 속도도, 손이 자라는 속도도, 눈물을 그치는 속도마저도
"...저도 어서 빨라지고 싶어요... 스승님처럼.. "
아즈루는 대답을 하면서도 계속 바닥만을 바라보며 몸을 안으로 움츠렸다.
눈을 보는 것은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과 대화하는 상황일때, '듣는 쪽'에 속한다.
듣는 쪽의 사람의 입장을 취하면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에 항상 충실히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고 ,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말하는데 에너지를 별로 쓰고싶지 않기때문에 , 아니 천성적으로 쓸 수 없기에 이정도는 기본적으로 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아즈루는 얘기할때, 얘기를 들을때 바닥을 바라보거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힘들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보지 않아도, 아즈루의 발끝에서부터 머리위의 삐져나온 잔머리까지 5살 아이의 분함과 슬픔, 열등감 , 자괴감 모든 감정 전부가 내 손에 묻은 눈물방울로 부터 전해져왔다.
내가 할 수있는 일은, 이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고, '위로'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분명 빨라질 수 있을거야. 참, 도장 뒷편에 내가 사는 집이 있는데, 그곳에 벚꽃들이 화려하게 피어있단다. 같이가서 기분전환하러 가자. "
" 그... 도장 담 너머로 보이는 그 큰 벚나무요? 우...우와! 보고싶어요 ! "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즈루는 우와 ── 하며, 내 허리춤의 오비를 살포시 잡았다.
아즈루의 얼굴에는 살짝 부푼 미소가 감돌았다.
나는 다른 한손으로 아즈루의 오비잡은 손을 풀고 내 손을 얹어 주었다.
그리고 본관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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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에 가기전에, 먼저 언덕에 있는 벚나무를 보기로 했다.
별관 뒷편 수풀을 지나, 벚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라이라와 하나비, 그리고 아버지와 베티까지 지난 주말에 같이 정리를 했는데도 , 초목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보니 이런저런 잡초들이 언덕 주변에 핀 꽃잔디(지면 패랭이꽃) 사이로 듬성듬성 나있었다.
그리고 별관 모퉁이를 돌자, 도장 뒷편의 중앙정원 (언덕처럼 약간 봉긋하게 솟았다. ) 에 큰 토종 벚나무가 우뚝 솟아 있었다.
매일 같이 창문뒤로 보는 나무지만, 가까이서 볼 수록 더 웅장하였으며, 굵직한 나무 줄기가 장엄하게 느껴졌다. 절정이 지나서 약간 떨어져 있고, 초록빛 잎새가 보였지만, 하얗고 풍성한 벚꽃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우와 ! 이렇게 큰 벚나무는 처음봐요 . 가까이서 보니까 더크다! ! "
아즈루는 눈을 빛내며 햇살이 닿지 않는 벚나무의 아래로 뛰어갔다.
"이 벚나무는 아즈루보다 1000살은 더 많을 거야. "
" 할아버지 벚나무네요! 아니다. 할머니인가?"
" 어느쪽이던지 간에, 노인이려나. 도장이 생기기 이전부터 계속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거든. "
" 멋져요! 그리고 주변에도 많은 꽃들이 피어있어요. 민들레랑 자주색 꽃들도 정말 많네요! "
자주색 꽃이라 하면, 아마 꽃잔디를 말하는 듯 했다.
라이라가 지난번에 ' 벚꽃이 지면 서운하니까 ── ' 라며 3월경에 아버지와 잔뜩 심어두었다.
언덕의 잔디보다 꽃잔디가 더 많이 보일 정도로 말이지
" 응. 그리고 도장에 사는 친구들하고 함께 심은 다른 꽃들도 많이 있어. "
물론, 꽃잔디 이외에도 주변 울타리에는 아직 채 피지않은 꽃들의 초목이 가득했다.
" 친구들도 있어요? 스승님의 친구들이라면 분명 멋질거에요!! 보고싶다...! "
" 뭐── 그렇지.. "
멋지다....라 적어도 아즈루의 교육상 좋지않은 사람은 몇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친구들을 이렇게 저평가 해서는 안되지만, 아즈루에게 있어서 도움이 될만한 사람들 위주로 만나게 하는게 좋겠지. 예의상 '인사'정도만 하고 ..
" ... ? "
내가 말을 늘어트리자, 아즈루는 갸우뚱 했다.
몇초가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즈루를 만나게 할 이런저런 인물들을 멍떄리며 생각하고 있던 중, 나의 어리석은 생각을 그만 두라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꼬르륵 ── )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즈루는 귀가 붉어지며 울듯한 얼굴로 나를 아래에서 지긋이 응시했다.
"..죄...죄송해요.. 배...배가고파서... "
"아, 벌써 네시구나. 같이 언덕아래에 있는 내 방으로 가자. 작은 선물을 줄게. "
아마,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지않은 채 긴장상태에서 대결을 벌였으니, 작은 5살의 아이는 배가 고팠을 것이다.
본관에 나름 '가정부' 라고 있는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것은 지금시간에는 폐가될지도 모르니, (5시부터 저녁준비를 할텐데, 4시에는 다른 일을 하고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내 방에 있는 과자와 차를 대접하기로 할까.
"! 저...저어...근데..
"? "
"정말... 저는 스승님의 제자로 적합한가요... ? 오히려 제가 감사하다고 선물을 드려야하는데..."
"나는, 성실한 사람이 제일 좋거든. 아즈루가 수련생들중에서 제일 성실하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선택한거야. "
그렇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성실한 사람' 이었다. 이 도장에는 성실하지 않은 사람들도 몇 있긴하지만, 그렇다고해서 그들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자기 역할을 책임감 있게 다하는 사람이 좋을 뿐이었다.
아즈루는 남들보다 속도는 느렸지만, 5살 아이들에 비해 월등히 자기 역할과 책무를 중요시 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렇기에 제자로 선택하기에도 충분했고. 받아 들이기에도 충분했다.
"....여..열심히 할게요! 헤헤... "
아즈루는 아까보다 더 귀와 볼을 발그레하게 붉히며 두손을 꽉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나에게로 달려왔다.
배고픈 아즈루에게는 미안하지만 먼저, 내방으로 가기전에 아버지에게 인사를 드리는게 좋지않나 생각해, 별관이 아닌 언덕을 내려와 본관으로 향했다.
-
본관 중앙 복도
나와 아즈루는 본관중앙복도에서도 가장 중앙에 있는, 가장 큰 장지문 앞에 섰다.
" 아. 아즈루 잠시만 기다리렴. 당주이신 아버지께 먼저 인사부터 드리자. "
"네..넷..! "
다다미가 15장정도 붙어있는, 혼자지내기에 꽤나 큰 아버지의 방이었다──.
(드륵 ㅡ )
장지문을 살짝 연 그 순간, 벽에 붙어있는 붙박이장 쪽에서 몸을 수그리고 엉덩이를 뒤로 뺀듯한 , (다행이도 속옷은 보이지 않았다) 자세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부스럭 부스럭 )
여자는 기척을 눈치챘는지, 매우 느린 동작으로 붙박이장에서 기어나왔다.
"아버지, 어... "
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기도전에, 마주쳐버린건 이 집안의 자칭 '가정부'인 「베티」였다.
"어어어어! 도련님 !! 자...잠시만요 오....오해입니다만! 전단지 으...응접실에 과자가 비었다고 생각해서...!! 여기서 가져가려고 한거라구요?! 주인님이 안계셔서 마음대로 들어와서 허락도없이 과자단지를 습격하려는게 아 ㄴ..... ! "
역시나 시덥지 않은 일이었다. 오후의 배고픔을 감추기 위한 도둑질 이었다.
"....휴우... "
" ? "
랄까,── 한숨밖에 나오지 않잖아 !
아즈루, 즉 그러니까 5살 남자아이에게 나는 교육상 매우 좋지않은 도둑질 장면을 보여주고 있던 것이었다.
선택 미스였다.
나는
'다시 시간을 돌리고 싶다' 라고 생각하며, 민망한 장면을 회피하기위해 아즈루의 손을 잡지않은 오른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시...실례했습니다..──! "
".. 아..안녕하세...! "
가정부는 내가 얼굴을 가리자마자 죽을 죄를 지었다는 듯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한다) 발빠르게 장지문 틈새로 달려나갔다.
아즈루가 인사할 새도 없었지만, 이 상황에서 인사를 시킬 수는 없었다.
"...어어어어? 바..방금 누구에요? "
" 이 집에 살고있는 메이드씨야. 가정부라고 생각하면 돼. "
"..우와 저 저렇게 말 빠른사람 처음봤어요! 이상한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는데... 그러니까 ...영어로.. O..P...P.A..I..."
베티는 이상한 뜻이 쓰여져 있는 앞치마를 주로 입는데, 내가 본것만 해도 거의 6가지는 족히 될 것이다.
미성년에게 부적절한 용어도 많이쓰여져 있었고, 오늘 입은 것은 OPPAI 그러니까 '가슴' 이라는 뜻의 옷이었다.
아마 앞치마 위 OPPAI라고 쓰여진 곳에 가슴의 위치가 있었기 때문에, 개그 소재라고 생각하고 입는 듯 했다.
하지만 5살 아이에게 말하기에는 ...
"뜻은 이해하지 않아도 된단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 있으면 열심히 매진하는.....그런..사람이란다... "
일단, 칭찬을 해두었다──
"오오! 역시 스승님의 친구는 멋지네요! 저사람도 성실한가보네요! "
"....그..글쎄.."
아즈루의 빛나는 눈을 나는, 절대 보지 않기위해 애썼다.
(드르륵 ㅡ)
곧이어, 바로 장지문이 열리며 기다리던 사람이 들어왔다.
"어이 삿쨩! 아버지의 방에는 왠일이냐? 야한책 같은거 갖고있지 않다고? 하하 ! ── "
"아버지...... "
아들한테 할 소리가 아닌 것 같은데요 ...
"이게 누구야! 아야나쨩의 ㄸ...아..아니지 아들인 아...아즈루 군! 오랜만이구나. 연습은 잘 되어가고있고 ? "
"아..안녕하세요 사토씨! "
아즈루는 배위에 손을 얹고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 . 이 사람은 「사쿠라이 사토」
바로 나의 아버지 이다. 화도류의 19대 당주로, 20년째 사쿠라이 도장의 당주로서 이곳을 이어가고 있는 사람이자, 유통업계에서 꽤나 이름을 떨치는 대기업 '사쿠라이사'의 회장 사쿠라이 신야의 동생이기도 하다.
내가 18살이 된 이번달 4월을 기준으로 해서, 아버지는 39살이 되었다.
아버지는 39살이 되어도, 외형은 여전히 5~6살이상은 족히 어려보였으며, 키도 아키라와 호각일 정도로 평균신장 이상이다. 아마 이렇게 어려보이는 이유는, 긍정적인 성격이 한 몫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아버지는 엄마인 사쿠라이 스미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더 밝아지고, 더 젊어졌다.
뭐, 아버지에 대한 설명은 이정도로 하고..
그리고 나는 , 아버지에게 차근차근히 아즈루를 도장에 데리고온 이유를 얘기했다.
" 흐음. 그랬었구나."
" 그래서, 우울해 보이는것 같아서, 기분전환 시켜주려고 데리고 왔어. "
" 호오ㅡ , 네가????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방이나 연습실에만 틀어박히는 녀석이. 스미레가 잘 컸다고 울겠어~~ 역시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야 변한다니까. "
아버지는 나의 행동을 비꼬는듯이 말했지만 딱히 반박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불과 2년전 만해도 아스텔에게 '너는 날이 서있는 칼 이네 ㅡ' 라는 소리를 들었으니까.
" 아즈루, 넌 활발한 남자가 되어야 한단다. "
아버지는 아즈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네..네에... 그..근데 스승님도.. 존경스러우신 분이셔서... "
" 아즈루, 괜찮아. 아버지 말이 맞으니까. "
" 그럼 그럼, 나이는 괜히 먹는 법이 아니지 하하하하! "
아즈루는,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헤헤── 하고 같이 아버지를 따라 웃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 자── 아즈루, 다른 곳도 구경시켜줄게. 일어나자 "
" 네..네에 ! "
배고픈 아이를 데리고 인사하는데 이래저래 시간을 쏟기는 미안했다.
-
002
장지문을 닫고 나와 거실로 가기위해 다시 복도를 걸었다.
아즈루는 처음 보는 본관이 신기했는지,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살펴보는 듯 했다.
" 복도가 정말 기네요. 집 맞아요?
"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모양이야. 지금은 열명정도 뿐이지만.. "
" 바...방은 몇개나 있어요? 문도 진짜 많아요! "
" 한 서른개 즈음 ? "
" 저희 집도 크...큰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쿠라이 도장은 역시 대단하네요! "
아즈루가 걷다말고 멈춰서서 다시 주먹을 불끈쥐며 눈을 보석처럼 빛냈다.
아즈루는 가끔씩 마음먹은 일들이 있을때마다, 눈을 반짝이며 주먹을 불끈 쥔다. 말보다는 생각이 많은 아이라, 좀처럼 행동이 보이지 않는데, 이 패턴만은 정확했다.
" 정원이 이렇게 중간에 있네요? 연못도 있다..! 우와 ! "
"텐류사이 도장도 이런 형태를 띄고있지 않니? "
복도가 작은 정원을 빙 둘러싼 가옥 형태. 전통적인 일본 가옥 (교토나 후쿠오카의 온천 가옥에 많은 형태) 형태로, 아즈루도 나무로된 가옥에 살아서 자주 보았을 풍경일 것이다. 그러나 아즈루는 처음본다는 듯 호기심이 가득했다.
"네..네에.. 그렇지만 연못은 없거든요 헤헤. 물고기도 있어요? "
" 잉어가 세마리정도 살고있어. "
" ...봐도 될까요? "
" 그럼. 저기 나막신이 있으니까.. "
배고픔 따위는 잊은 듯 했다.
아즈루가 나막신을 신고 정원의 연못쪽으로 걸어갔다.
연못 주변에는 아즈루 키만한 풀들이 우거져 있었는데, 언덕 쪽을 정리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듬성 듬성 키가 큰 잡초들이 나있는 상태였다. 내 키를 기준으로는 별로 크지 않다고 생각해서 방치해 두었는데, 아즈루가 들어가니 확연히 잡초의 길이 감이 와닿았다.
고 생각한 그때
풀들이 움직이더니 옷 주변에 흙을 군데군데 묻힌 한 소녀가 허리를 굽혔다가 피는 동작을 취하며 덤불 사이에서 나타났다.
( 불쑥 ── )
", 씨앗이 어디로 떨어진거야... "
"우..우와앗! "
"에..엣! 노..놀래라.. 어..어린아이? "
아즈루가 다가간 풀더미 쪽에서 불쑥 나타났기에, 아즈루는 놀라서 뒤로 고꾸라졌다.
", 라이라였구나. 작아서 안보였어 . "
" 잠깐, 사쿠라기!..작다니! 단지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구. 정말...ㅡ
" 장난이야.. 아니... 아닌가.. "
" 일부러구나, 흐응 ── "
약간의 장난이 들어간 말이었는데, 라이라는 조금 불편한듯 볼을 살짝 부풀려 나를 바라봤다.
옷의 군데군데에 흙이 묻어있긴 했지만, 왜인지 모르게 얼굴 이나 살이 보이는 부분, 머리만큼은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는 위에서 말했듯이, '라이라'로 , 도장에 온지 1년 반정도 되었다.
아스텔의 부탁으로, 아버지에게 사정에 도장에 같이 살게 되었는데, 겉모습은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하고 있는 마계인이다.
그녀의 겉모습은 인간이라기에는 살짝 위화감이 드는데, ── 좋은 의미로 인간중에서 호각으로 그녀에게 상대가 되는 외모를 가진 사람을 얼마 없을 거라는 점이고, 나쁜의미로 인형같이 어색한 느낌이라는 것이다.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의 피부는 털도 거의 없이 도자기처럼 매끈했고, 핏기가 없는 하얀 도화지같았다.
눈은 알비노가 아니면 도통 보기 힘들다는, 적안이었고 속눈썹은 낙타처럼 풍성하였다.
머릿결은 마치 라일락 꽃과 같은 연한 보랏빛이었고, 눈썹과 속눈썹도 짙은 보랏빛이었다. 그렇다. 마치 인형이 아닌이상 인간에게서는 볼 수없는 외모였다. 인간의 외형이지만, 러시아와 유럽의 서양인들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
키는 내 가슴께에 겨우 닿을 정도로 매우 작지만, 그 작은 몸대신 존재감을 나타내 주는듯 나올곳은 제대로 나오고 들어갈 곳은 적당히 들어가 있었다. 여자였다면 조금 질투가 났을거라고 종종 생각한다.
마계인의 외형은 언제봐도 신기하기때문에 라이라에 대한 설명이 길어졌지만, 일단 아즈루에게 소개하기로 한다.
" 아, 이 애는 내가 둔 첫 제자인, 텐류사이 아즈루라고 해. "
"안녕하세요.. 텐류사이 아즈루라고 합니다.. 여섯살이에요.. "
"안녕~ 아즈루군. 누나는 라이라 라고해~~ "
".네에...."
아 ㅡ,
숯기가 부족한 아즈루 에게는 상냥하게 웃어주는 예쁜 누나는 힘든 모양이었다.
"근데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야? "
"씨앗을 떨어트렸거든. 왜, 지난번에 너한테 얘기했었잖아? 여기에다가 난초좀 심고싶다고. "
지난번에, 그녀는 하나비와 함께 나에게 와서 본관 정원의 잡초를 슬슬 정리해야 하지 않겠냐고 의논해 왔었다.
"아, 그랬었지. ㅡ 지금 심는거야? "
"그러려고 했는데, 씨앗을 전부다 떨어트려서.. 하아 ㅡ "
"여분이 있을테니까 나중에 심어. 가져다줄게. "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
아즈루는 우리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는, 연못으로 고개를 돌린후 검지손가락을 펴서 물고기 수를 셌다.
"와아 ㅡ, 잉어다! 하나.. .두울... 스승님! 아기물고기도 있어요! 세마리가 아니에요~ "
"그러네. 세마리가 아니었구나. 요즘 잘 보지 못했거든. "
"저 물고기는, 비단잉어라고 해. 정말 화려한 색깔이지? "
"네 ! 황금빛으로 반짝거려요 우와...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 예의가 참 바르네. 귀엽게 생겼고., 후후 "
라이라가 허리를 숙이고 아즈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 가...감사합니다 . "
아즈루의 귀가 다시 붉어졌다.
숯기가 부족한 아즈루 에게는 상냥하게 웃어주는 예쁜 누나는 역시 힘든 모양이었다.
" 맞다 , 아즈루 배고프다고 하지 않았니? 내 방에 과자가 좀 있어서. "
" 아...! 정말요? "
" 응. 가자. "
" 아..라..라이라누나.. 아..안녕히계세요! 감사했습니다 . "
" 응~ 잘가. "
" 헤헤..."
라이라의 인사를 받고 마루에 올라와서 다시 복도를 걸었다.
아즈루의 붉은 귀가 점차 상아빛으로 가라앉았다.
" 역시 스승님의 친구분들은 정말 멋있어요. "
" 그래? 아즈루가 그렇게 생각해주니 기분이 좋네. "
처음에 베티의 도둑질을 보여준 것은 미스였지만, 다행이 이번에는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같다.
아즈루는 상당히 만족스러워 했다. 역시 여자애들이 좋으려나.. 5살이지만 아즈루도 남자구나 싶었다.
" 헤헤... 정말 예쁘고 착한 누나 였어요. 하얀 고양이 같았고.. "
" 친해지면 좋아. 라이라는 상냥하거든, "
" 어서 다른 사람들도 만나보고 싶어요! "
" 그...그래... "
부디 아즈루의 교육상 만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은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라는 생각은 정말 잠깐 뿐이었다.
-
003
내 방으로 가기위해 별관으로 가던 도중,
아즈루가 내 손을 풀고 아랫배 쪽으로 손을 가져가며 얼굴이 붉어졌다.
" 아, 스..스승님..저. 화..화장실에 가고싶어요...."
" 괜찮아. 여기 모퉁이 왼쪽을 돌면 전신거울 옆에 문이 하나 있을거야. "
" 네! 감사합니다 헤헤... "
아즈루는 급했는지, 빠른 종종 걸음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모퉁이를 돌자마자 수초 후,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히..히익! 누...누구세요!! "
"후후후후후..... 거울을 언제보아도 이몸은 아름답나니... 하아...!시대를 잘못 태어난 나의 죄...!
어라라? 이게 왠 꼬마 boy인지 ?? "
" 으...으아아아아아!!! 귀신이다....!!! 으아아아앙!!"
" 에...에엑????!?!?! "
아즈루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살짝 높은 미성의 남자목소리도 함께 울려퍼졌다.
나는 무슨 일이라도 생겼을까봐, 모퉁이에 놓여져있던 목도를 들고 재빨리 모퉁이를 돌았다.
" 아즈루 무슨일이야!! "
" 으아아아아앙....우엥.... "
" 으에에엑!! 자..잠깐 사쿠라기 그 목도좀 치워봐! 놀란건 오히려 이쪽이라고!!! "
모퉁이를 돈 화장실 문 옆 전신거울 앞에 꽤 큰 키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괴한이 요상한 포즈로 서있었다.
처마가 북향이다보니 그림자에 가려져 괴한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목소리를 듣고서, 금세 알 수있었다.
" 나..! 나라구 아키라! 슈머즈 아키라! "
" 아... 아아.. "
나는 목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동시에
아즈루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밟아버렸다.
" 스...스승님.. 저..저.. "
바지에 실례를 하고 만 것이다.
" 에...에엑.... 나..나때문에 ..는 아니지...? "
"하아.... 그러니까 왜 거기서 폼잡고 있는거야. 그림자에 가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라도 놀랐을거야 "
" 폼잡다니..난 언제나 이런 'form' 이라구? "
영어 form , 즉 '형태'라는 단어유희로 개그를 치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다.
하나도 웃기지 않아 평소처럼 무시하기로 한다.
"아즈루 괜찮아. 신경쓰지말고 화장실 다녀오렴. 옷 가져다 줄테니까. "
" 히..히잉..죄송해요오.... "
"무...무시?!?!! 무시했지 지금! 무시한거지!! 이몸을 !! "
화장실 앞에서 이상한 대사를 외치며 이상한 자세로 변태같이 보인 그는 바로 이 도장의 자칭 아이돌 슈머즈 아키라다.
그는 평범한 인간인데, 한 마녀와 계약하고 실험체가 된 이후로 마력을 쓰게 되었다는 것 같다.
미국계 일본인으로 , 정확히는 엄마가 서양인 이다. 그렇다보니 그의 외형은 평균 일본인보다 큰 키를 가지고 있었으며 (나보다는 조금 작았다) , 강에 비치며 바람에 흔들리는 버들 수양같은 금발을 소유하고 있었다. 오른쪽 앞머리는 멋인지, 턱에 닿을 정도로 길게 사선으로 자른 형태였다. 몸에 난 털도 서양인처럼 약간 누런빛을 띄었으며, 피부는 흔히들 동화에 나오는 백마탄 왕자님 같은 뽀얀 우유 빛이었다.
가만히만 있으면, 반정도 아니 반 하고도 1 이상 갈정도로 잘생겼다고 볼 수있지만, 그는 늘 입과 몸개그가 문제였다.
같이 있으면 이래저래 시끄럽지만 , 나름 의리도 있고 진지할때는 진지해서 ( 거의 없지만 ) 친구로서는 괜찮은 아이다.
라고 그의 모습을 보며 생각하고 있던 그 순간, 아즈루가 입을 열었다.
".아.저... 죄..죄송합니다.. 콩나물형... "
"코...콩나물이라니...?! 하아!! "
아키라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생기며 미간이 지구 내핵에 닿을 정도로 깊게 찌푸려 졌다.
그나저나
진심으로
요근래 1개월사이에 들은 비유중에서 제일 웃기다고 생각했다.
꽤 하잖아 아즈루 ! !
크게 웃고싶었지만, 아즈루에게 친구를 비웃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간신히 참았다.
"잘 어울리는데.. 말 잘했다 아즈루. "
"에....마음에 안드셨나요..? "
"....후후.... 그렇지 않단다. 기발한 발상인걸? 이렇게 잘생긴 콩나물은 잘 없으니까 말이지!! 하하하하! "
아키라도 이미지를 위해 참는듯 했다.
"하...푸..풋..."
나도 모르게 입에서 웃음이 새어나왔다.
"! 너 지금 웃었지! 웃은거 맞지?!! 어이.. 두고보자고 벚나무자식아 ! 그나저나 얘는... 누구야? "
벚나무 자식이라니.. 전혀 안웃긴데 그건..
"아, 내 첫 제자인 텐류사이 아즈루 라고해. "
"...안녕하세요.. 텐류사이 아즈루라고합니다... "
"헤에.. 넌 이 형처럼 되면 안된다? 나같이 멋진 콩나물 형처럼 되야해. 모든게 우 ★수 하지 ! 완벽해! "
아까는 그렇게 콩나물이라고 부르는걸 싫어하더니, 금세 마음에 들은 듯 하다.
"....스..스승님도 멋진 분이시니까...! "
"으엑...너 대체 어떤 세뇌를 한거냐... 어린아이가 불쌍하게.."
세뇌는 아니지만, 조금의 이미지 관리는했지.
"너...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거야.... "
"그거야.... 아!! 맞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세기의 개그맨 우자마루씨★ 방송할 시간이야!!!! 야바잇!!!! 난 이만간다!! "
얘기 도중에 아키라는 갑자기 불현듯 무언가 떠올랐는지, 매우 빠른 입놀림으로 소리를 지르며 우리들 옆을 달려나갔다.
" 아....안녕히 가세요....! 콩나물형 !! "
" 사요 ★ 나라 !!!! "
" 하아.. 언제 봐도 소란스럽네 "
" 헤헤..그래도 재미있는 사람이네요. "
" 그...그래... 여하튼 먼저 화장실 들어가 있으렴. 옷을 가져올테니까 "
아즈루를 화장실로 안내하고, 다시 수련 도장으로 가서 아즈루에게 입힐 옷을 가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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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4는 2부에서 씁니다 ★